너와 나의 한계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모습을 미화한다.
선택의 과정에서 우선 충동적으로 선택하고 나서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과정을 거치듯
부끄럽고 치졸했던 자신의 과거에 어떻게든 이유를 가져다 붙이고 스스로의 변호 논리를 만들어 낸다.
그러는 사이 유치하고 왜소했던 자신의 모습은 내 머리 속에선 어느새 내 것이 아니게 되어 버린다.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자신 마저도 세뇌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리곤 "나는 지금 진지해"라는 표현으로 완벽하게 방어막을 치고 마무리한다.  

하지만 자신을 세뇌시킨 그 합리화 논리가 타인에게 먹혀들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타인은 내 안의 유치하고 왜소했던 모습을 보고 있는데 나는 그런 것들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타인들은 계속 나에게 충고와 경고를 하지만 나에게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잡설일 뿐이다.
그리곤 진지하게 폼 잡으며 이야기 한다. "니들이 뭘 알어" 사실 정말로 모르는 것은 나일지도 모르는데

인간은 알 수 없다.
평소 진실하다는 사람조차 그 마음 속에 어떤 그럴싸한 방어막으로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 있을지 모른다.
수많은 priciple과 theory를 만들어 낸 과학적 연구 방법이라는 것은
a라는 원인에 c라는 결과가 반복된다면 그 사이의 블랙박스에 b라는 과정이 숨어 있다는 것을 예측하고
a와 c를 d와 f, g와 h로 바꾸어가면서 b가 옳음을 증명해 가게 되는데
일상에서의 인간은 이런 식으로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어느정도 관찰해보고 b라는 것을 알아 냈다고 해도
언제 그 b라는 것을 부정하는 행동을 할지 알 수가 없다.
이런 방법으로 인간을 이해해 보려 시도하다간 뒤통수 맞기 십상이다.

디버거는 바라지도 않는다. 인간의 속을 덤프 떠서 찬찬히 읽어볼 수라도 잇으면 좋으련만... 정말 어렵다.
그 어렵다는 게 정말 다행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인간 사회의 충돌과 대립은 그것으로부터 시작 됨을
부정할 수 없다. 
스스로를 합리화 시켜 버리기 때문에 일단 내 문제가 되어 버리면 b라는 것은 a가 되기도 하고 z가 되기도 한다.
문제의 본질이 흐려지고 그 뒤에 남은 건 진흙탕 싸움 뿐.
전쟁과 범죄는 필연적이다.


Posted by ekARma

2009/09/09 11:30 2009/09/0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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