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23일 화요일 오살나게 더움. 아무튼 맑음
오늘 묵호를 떠나 백봉령을 가기 전에 거치게 되는 이름마저도 싱그러운 달방댐에서 기분 좋은 만남이 있었다.
백봉령을 그야말로 해발에서 시작해서 올라야 하기 때문에 미리 쉬어 두려고 달방저수지 쉼터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펑하고 나타나서는 저수지에 대고 와~~~~소리를 지르더니 사과를 깎아서 절반을 나에게 주었다. ( _ _ );; 내가 감사의 인사를 하고 먼저 길을 나서는데 그 아저씨가 나를 '달려서' 지나치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럼 여기까지 뛰어왔다는 거야!! 쉼터라고는 해도 아랫마을까지는 거리도 좀 되고 경사도 상당했는데 맙소사. 순간 나는 배낭을 짊어진 채 그 아저씨를 따라 뛰었다. 소리없이 은밀하게.... 뭔가 앞서고 싶다거나의 이유는 아니었다. 어디까지 뛰나 보고 싶다는 그 정도의 이유였을 것이다. 결국 200m 쯤 지나 배낭의 탈착 부분들의 플라스틱 연결고리들이 많이 상했다는 사실과 아직 가야할 길이 3/4 정도가 남았다는 사실들이 나의 뇌에 전기충격을 가해주어 간신히 멈추어 설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사람은 내가 보지 않아도 자기가 목표한 만큼의 거리를 뛰어 가겠지. 오히려 다른 사람이 보지 않기 때문에 더욱 더. 자기 자신을 납득시키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자신과의 타협을 부끄러워하는 법이니까.
아저씨는 보이지 않게 되고 '다시 그리워 진다'는 천하절경 무릉계곡도 다시 그리워질까봐 그냥 지나친 5시간 반. 겨우 백봉령을 넘었다. 해발 780m 밖에 안된다는데 이 겨울에 땀이 옷을 절이도록 흘러내리다니. 아마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반쯤 얼어있는 계곡물에 목욕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도로가에 있었지만 높이차가 커서 일부러 고개를 숙이고 보지 않는 이상 보이지 않을 그런 계곡이었다. (정말로. ) 뭐, 혹시나 본 사람이 있더라고 그 사람이나 나나 서로 좋은 추억거리 하나일 뿐일테지 후훗.
이제 영서다. 백봉령을 넘자마자 태백산맥이란 방풍막이 사라져 버린 지금, 얼굴을 할퀴는 시베리아의 공기가 생소하다. 이제 3/4. 참고 참고 또 참았는데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다시 한 번 참는 것이 인내라고 내 몸은 기억하고 있다. 무거운 다리가 신발을 끌게 만드는 것 마저도 감사해 하며 걸어야지. 그 끝마침의 순간이 더없이 달콤하다는 것 또한 내 몸은 기억하고 있으니까.

독야청청이 아니라 밑에 고만고만한 산들을 무지하게 갖고 있다. 그래서 바로 밑에서는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 내가 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지에 오르면 또 더 높은 곳이 보이고 또 그곳을 넘으면 또
더 높은 곳이 보이고... 우리나라 산은 대부분은 이런 식이다. 그래... 그런 식으로 망할... ㅜㅡ 마지막
이라고 죽을 힘을 다했는데 그 곳이 첫번째 관문이라고 했을 때의 심정이 어떠하랴... "

- "달방 저수지. 사진 왼쪽으로 정자가 있었다. 그 아저씨가 거기서 소리를 지르셨지. 솔직히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경치 좋은 데서 소리지르는 분들 몇 분 봐왔다. 그 때마다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지만 항상 생각한다. 나의 낭만이 남에게 유치한 감상이 될 수 있다는 걸. 나의 즐거움이 타인에게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걸. "

- "어느 계곡. 여기라고 여기! 환경파괴 이런 거 신경쓰지마. 난 언제나 내가 있던 자리
내가 오기 전보다 더 깨끗하게 정리해 놓는다고. "

- "수준점. 백봉령을 오르는 동안 열손가락 더 접을 만큼 본 것 같다. 우리나라 해발의 기준이
인천 앞바다 였다니 ㅋㅋ. "


- "백봉령 옛길. 이곳은 출구다. 오르기 시작할 때 무슨 샛길을 본 거 같은데 아마 이곳으로
이어지나 보다. 차라리 아스팔트보다 산길도 괜찮았을텐데. 중요한 건 여기서 정상까지는
아직 반이나 남았다는 거! ㅜㅡ"

- "태백산맥 작업장. 뭘 캐는지, 지으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TNT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역시 환경파괴
라지만 만일 저곳에 호텔이 들어선다면 나도 한 번쯤 머무르고 싶을 것 같다. 저기는 아직 바다가 보이는
위치였다고 ! "

- "백봉령. 백봉령에 있는 백두대간 혈맥. 저길 자르고 운하가 생기는 건가.... 에고 제발 "

- "백봉령.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조침령, 구룡령, 운두령, 진고개, 대관령, 삽당령, 백봉령, 두타산으로
이어지는 라인에서 끝에서 두세번째의 높이지만. 정말 장난 아니었다. 그래도 정상 부근에 음식점도 있고
사람이 있긴 있더라. 정상에 오르니 이미 해가 지고 있어서 잠자리를 잡을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지
알 수가 없어서 일단 백봉령 쉼터에 들어가 밥을 먹기로 했다. 자리를 잡고서는 막국수를 시켰더니 이
겨울에 무슨 막국수야!!! 라고 하시면서 너무 많이 주셨다. ( - -);; 겨울이라 쉼터에 있는 가게들 모두
장사가 안되는 모양이었다. 내가 그 쉼터의 유일한 고객이었다고. (아마도)
여행하고 처음으로 음식점에서 먹는 음식에 행복해하며 계산을 하는데 아들 뻘 되는 사람이 밤에 산
속에서 잘게 걱정이 되셨는지 아직 막차 안 지나갔을 거라고 빨리 버스 타고 내려가라고 하셨다. 버스 탈
마음은 없었지만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오는데 배낭에 수저통이 걸려 떨어져 박살이 나버렸다. 헉 ( _ _);;
난 변상을 하려고 했지만 주인 내외 분이 버스 놓치겠다고 괜찮으니까 빨리 가보라고 하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르겠다. (어두워진 후 한 동안 내리막길을 걷는데 결국 버스는 지나가지 않았다...) "
# 일일노트
@ 묵호 중학교
@ 천곡 천연동굴 (그냥 지나침)
@ 무릉계곡
- 다시 그리워 진다는 천하절경 무릉계곡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음
@ 달방댐
- 구보 뛰는 아저씨. 사과 줌
@ 백봉령
- 해발 780m
- 수준점 표지. 인천항 평군 해수 높이 0.0m 기준
- 옛 백봉령 길
- 백봉령을 넘자 정말 공기가 차가워짐 (정신 입)
- 백봉령 쉼터 10호 가게 숟가락통 깸
@ 백봉령 휴게소 마을 회관 옆 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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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걸은 시간 : 07:30 ~ 18:00 (약 31Km)
누적거리 : 194.9 Km
사용여비 : 빵 3 + 우유 1 2300원 + 막국수 5000원 + 사이다 600원 + 새우깡 600원 = 8,500원
누적여비 : 60,960 원
Posted by ekARma

